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인리히 힘러 (문단 편집) == 개인사 == [[이중성]]이 굉장한 인간으로, 딱 한 번 아우슈비츠에 가서 자신의 앞에서 실제로 [[슈츠슈타펠|SS]] 대원들이 [[유대인]]을 처형하는 것을 보곤 기절할 뻔했지만 다시 [[베를린]]으로 가서는 유대인 학살을 계속하라고 지시하는 서류는 잘만 작성했고, 약하고 부드러운 평범한 공무원의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데 비해 온갖 사악하고 음침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다 해대는 덕분에 [[아돌프 히틀러]]의 애인이었던 [[에바 브라운]]은 자기 일기에 "가까이 하기 싫은 '''소름끼치는 인간'''"이라고 온갖 험담을 다하고 있다.[* 이 여자는 [[마르틴 보어만]]도 역겹다고 깐 적이 있다. 근데 보어만은 히틀러의 총애를 믿고 총통 및 힘러, 괴벨스 등의 고위급 여비서들을 불쾌하게 하는 등 더러운 짓을 많이 해 고위급들도 보어만을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에바 브라운의 막대한 사치를 감당하는 건 보어만의 금융 운용 덕택이란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 본인 빼고는...] 이런 일을 하면서도 일상에서는 [[영화]]를 보면 입장 체크할 때 찢고 남은 반쪽 영화표도 모조리 모았고, 자신의 나이 든 노부모가 자기 관용차를 타고 외출을 하면 그 경비는 꼬박꼬박 자기 급료에서 공제하는 등 청렴하다고 할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바가 있다. 자신이 등용했지만 나중에 대립하게 되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몽골리안이라고 욕했다.[* 하이드리히도 하인리히 힘러를 무능한 게 총통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리 보장이나 받는다고 무시했고, 종종 그를 엿먹이는 보고를 상부에 한 적이 있다.] 하이드리히가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듯.[* 정작 힘러가 하이드리히를 발탁한 이유도 하이드리히의 금발벽안과 좋은 떡대, 즉 전형적인 게르만족 인상이 마음에 들어서였다고 한다.] 더 웃긴 건 오히려 힘러 스스로야말로 몽골리안과 비슷하게 생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당장 사진에 독일 이름만 빼고 일본 이름만 슬쩍 끼워도 일본인으로 착각할 수 있을 용모이다.[* 2차 대전기의 일본군 하면 떠오르는 [[도조 히데키|'''안경 쓰고 콧수염 기른''' 빡빡이]]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머리카락만 가리고 본다면 진짜로 그 이미지이다. 게다가 얼굴형과 표정은 히로히토와 닮았다.] [[에바 브라운]]이 직접 찍은 영상 필름에서 하인리히 힘러가 하이드리히 및 그의 부하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다가 에바 브라운이 자신을 찍는 것을 보고 웃는 장면이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후 학자들이 하인리히 힘러의 입모양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해 보니, 유대인 학살 계획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고 추정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입모양만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완전히 파악하는 게 불가능한 데다가, 하인리히 힘러는 유대인 학살 계획같이 주요 사항은 혼자서 하거나 극비리에 소수의 SS 고위 간부들과 했지 저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았으므로 추정일 뿐이다. 그리고 어차피 서류로 남은 게 있어서 저지른 건 다 공개됐다. 오죽하면 다른 나치 핵심전범들도 화장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사형당한 직후 [[장례]]는 치러줬는데 힘러는 그냥 화장만 해버렸을까. 그 외에도 [[오토 카리우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 예로 그가 부상에서 회복되자 차와 운전병을 보내 도시를 관람시켜 주었고 카리우스가 친위대의 특별 우대에 대해서 비판하는데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그걸 끝까지 다 경청하고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무슨 일이 생겨서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자신한테 연락을 달라고 했고 증거로 문서를 만들어 줬다. 이후 종전에 이를 때까지 카리우스는 하인리히 힘러가 써준 이 문서들 덕을 톡톡히 본다. 덕분에 카리우스는 하인리히 힘러에 대해서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었다고.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을 도와준 부분에 한해서 고맙게 생각할 뿐 그가 유대인 말살을 지휘한 것까지 실드치지는 않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 '진흙 속의 호랑이'를 읽어보길. 나치는 [[우생학]]과 관련된 목적으로 상당한 동물애호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하인리히 힘러도 예외가 아니였다. 하인리히 힘러는 동물 보호와 관련된 법안들을 만드는 데 많은 일들을 했으며 동물들도 인도적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나치에서 동물 구분을 '인간'과 '동물', '열등한 인간'으로 나눈 것에서 비롯되며 동물은 인간과 닮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충성심과 인간과의 교류로 사랑을 받을 수 있으니 가치가 있지만 '열등한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지녔지만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생물'''로 인류가 동물보다 높은 존재로 가진 우월한 순수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일찌감치 절멸하는 것이 인류의 혈통 보존과 문명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양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일본도]]를 선물로 받고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하며 게르만인과 동북아 동양인의 공통점이 많다고 극찬했기도 하며 또한 동양 불교문화에도 심취해서 자신이 총애하는 마사지사를 '부처의 손길'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사지를 애용하는 것도 동양문화에 영향이 크다.] 또한 국방군에선 일본군을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족속들이라고 평가하는 여론이 많은 반면, 힘러는 친위대에게 '일본군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연설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국방군 장병들은 친위대를 '무지막지한데 비합리적'이라고 일본군과 비슷하게 봤다. [[오토 카리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주변인들에게 4차원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고 생각보다 굉장히 유머러스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